월성원자력발전소 내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캐니스터 ⓒ인사이트N파워 DB
월성원자력발전소 내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캐니스터 ⓒ인사이트N파워 DB

[프랑스=인사이트N파워] 원자력발전은 우라늄을 연료에 사용하는데, 발전에 사용됐던 우라늄 핵연료를 사용후핵연료(Spent Nuclear Fuel)라고 한다. 사실 사용후핵연료의 최종 목표는 영구처분(Final Disposal)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을 운영하는 국가가 없을 만큼 최종 처분장 마련은 어려운 상황이다.

전 세계에서 원자력발전을 운영 중인 국가는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총 34개국이다. 이 중 독일, 핀란드, 미국, 스웨덴, 스페인, 캐나다 등 7개 국가는 직접처분을, 러시아와 영국, 프랑스, 일본 등 4개 국가는 재처리 후 처분을 채택했으며, 나머지 국가는 정책 결정을 유보하고 있다.

12월 현재 우리나라는 총 26기 원전(영구정지된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 포함)내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에 총 50만4809다발(경수로 2만733다발, 중수로 48만4076다발)이 저장 중이다. 중수로인 월성원전은 저장시설의 포화에 대비해 지난해 9월부터 조밀건식저장시설 맥스터(MACSTOR) 확장공사를 진행 중이지만 경수로는 2031년 한빛원전을 시작으로 고리원전(2031년), 한울원전(2032년), 신월성원전(2044년) 순으로 포화될 예정이다.

창간1주년을 맞는 <인사이트N파워>가 10년 후 포화상태에 이르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의 해법을 찾기 위해 우리보다 한발 앞서있는 프랑스 현지를 취재했다.

현재 56기의 원전을 운영 중인 프랑스는 우라늄 정련 및 변환, 우라늄 농축, 핵연료 가공,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원자로 운영과 해체까지 원전 핵주기의 전 과정에 걸친 우수한 기술력을 갖고 있다. 이 시설들에서 다양한 종류의 방사성폐기물이 발생된다.

방사성폐기물을 분류하는 기준은 국가마다 다르지만 프랑스의 경우는 방사선 세기와 반감기에 따라 ▲극저준위(Very low level waste) ▲중·저준위 단수명(Intermediate and low level short-lived waste) ▲저준위 장수명(Low level long-lived waste) ▲중준위 장수명(Intermediate level long-lived waste) ▲고준위방사성폐기물(High level waste)등 총 5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High level waste)은 열과 방사능 준위가 높은 폐기물을 말한다. 사용후핵연료는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의 일종이다.

프랑스의 방사성폐기물 관리 정책은 ‘신뢰성과 투명성’을 바탕으로 국민과 환경을 방사성폐기물의 위해로부터 보호하며, 미래 세대의 부담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철저하고 관리하는 것이 목적이다. 특히 프랑스는 사용후핵연료에 남아있는 플루토늄을 추출해 원전 연료로 재활용한 후 처분하는 ‘재처리’ 정책을 가장 활발하고 추진하고 있다.

재처리 과정에서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분리, 회수할 수 있지만 그 밖의 원소들(잔여물)인 고준위폐기물(HLW)은 유리고체화를 거쳐 내구성이 강한 저장용기에 담아 처분하게 된다. 다만 발생량(부피 5%)이 줄어들 뿐 폐기물은 나오기 때문에 영구처분장은 필요하다.

프랑스는 매년 1200t의 사용후핵연료가 발생하는데, 전량 재처리하고 있다. 원자로에서 발생된 사용후핵연료는 라하그(La Hague)재처리시설로 운반해 습식저장시설(용량 1만4400t)에 저장된다. 이 시설은 중간저장시설로 분류되며 1979년부터 운영 중이다. 프랑스는 다른 국가들의 사용후핵연료 위탁재처리도 맡고 있지만 단지 재처리시설을 제공할 뿐 타국가의 사용후핵연료 처분은 법에 의해 금지하고 있다.

한편 1980년대 후반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부지선정을 추진하던 프랑스는 국민들의 반대로 무산된다. 하지만 좌절을 교훈삼아 1991년 부지 선정에서 지역주민의 의견을 먼저 듣고 타당성을 검토한다는 내용을 담은 「방사성폐기물관리연구법」을 마련하고, 이후 15년간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심지층 처분을 기본 방침으로 2006년 「고준위방사성폐기물관리법」이 제정됐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대중홍보와 투명성 유지를 위해 정책결정 과정에서 주민참여와 토론을 적극 활용했는데, 독립적인 국가공공토론위원회(CNDP, Commission Nstional du Debat Public)를 구성해 기술적 검토 포함한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종합한 끝에 2010년에 심지층처분장 건설을 위한 뷰흐(Bure) 지역을 선정했다. 이것이 바로 시제오(CIGEO) 프로젝트이다. 2035년 첫 실증운영을 목표로 지하 500m 점토층에 심지층 영구처분장을 건설, 재처리된 사용후핵연료를 향후 100년 동안 인간의 생활권에서 격리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이다.

프랑스 동부 뫼즈·오트마른 지역내 뷰흐(Bure) 심지층 지하연구시설(URL) 내부 ⓒ프랑스 뷰흐=김소연 기자
프랑스 동부 뫼즈·오트마른 지역내 뷰흐(Bure) 심지층 지하연구시설(URL) 내부 ⓒ프랑스 뷰흐=김소연 기자

프랑스가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100년)영구처분장 운영' 등 장기대책을 마련한 것과는 달리 우리는 단기 대책인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 저장 시설을 준공한 것 외에 관련 정책이 40년째 표류중이다. 한국의 경우 지난 정부들은 2009년에 법제화된 공론화를 2013년 10월부터 20개월간 거쳐 2016년 7월 고준위 관리 기본계획 확정 후, 공론화위원회 권고안과 지역의견 등을 전향적으로 수용해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부지선정절차 및 유치지역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1차 기본계획’에 대한 재검토 수순을 밟았고, 재검토 23개월 만인 지난 3월 ‘사용후핵연료 정책 대(對)정부 권고안’이 발표됐다. 이에 정부는 권고안을 토대로 미래세대를 위해 고준위방폐물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방식과 절차를 담은 「제2차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회(안)」마련하고, 오는 21일까지 행정예고를 고시했다.

반면 지난 9월 국회 산업통상자원벤처중소기업위원회 소속 김성환(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독립된 행정위원회 설립과 부지선정 절차 등을 법제화한「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한 후 이해당사자간 첨예한 갈등을 부추기는 상황이다.

조성경 명지대학교 교수는 “공론화를 거쳐 법에 따라 2016년 수립한 ‘1차 기본계획’을 문재인 정권은 전면 부인하고, 2년간 재검토 후 올해 4월 권고안으로 후퇴시켰다”면서 “새로운 기본계획의 수립 촉구가 아닌 1차 기본계획을 즉각 부활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조 교수는 “(2차 기본계획(안)에는 원천적으로 봉쇄됐지만) 사용후핵연료를 포함한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기술혁신과 확산을 주도하고, 사용후핵연료의 운반과 저장, 처분을 책임질 전문기관의 설립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기관의 주도권 싸움을 할 때가 아니다. 오히려 세포 분화를 통해 더 튼튼한 개체를 만들 수 있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조 교수는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부정할 수 없는 원전 활용의 아킬레스건이다. 기본계획은 완벽하지도 완벽할 수도 없다”며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가 아닌 여기서부터 달라진 현실에 맞게 보완해 실행에 돌입해야 한다. 이를 위해 원자력계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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