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염려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골든타임을 원자력계와 함께 지켜내고 싶다.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만 힘을 보태면 에너지안보도 지키고, 원자력도 살릴 수 있다.”

토법고로(土法高爐)는 중국인들이 사용한 홈메이드 용광로이다. 중국 초대 국가주석인 마오쩌둥(모택동, 毛澤東) 지도부는 대약진 운동(1958년~1962년 ) 당시 고철을 모아 강철을 만들자는 정책을 시행했는데, 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목표량을 무리하게 설정했다.

인민들은 목표량을 채우기 위해 멀쩡한 농기구뿐만 아니라 심지어 양철지붕까지 뜯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긁어모아 용광로인 토법고로에 녹였지만 강철은 커녕 철이 순수하지 못하고 품질이 형편없어 쉽게 바스라졌기 때문에 쓸모가 없었다. 공산당 지도부는 몰랐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것은 강철이 아니라 탄소덩어리 선철이었던 것이다.

결국 토법고로는 대약진 운동 최대의 실패 중 하나로, 누구든 기관장(혹은 대통령) 임기 중에 성과를 내려고 무리하게 일을 추진하다가 흔히 만드는 유사한 실책일 빗대어 거론되고 있다.

‘에너지안보와 원자력살리기의 골든타임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지난 9월 1일 하재주(사진) 한국원자력학회 제33대 회장이 취임했다. 1년의 짧은 재임기간이지만 학회가 과학과 기술에 기반을 둔 학술적 관점에서 최적의 에너지믹스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고민 중이라는 그는 “지금의 에너지정책이 토법고로와 비슷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7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주재한 ‘2050 탄소중립 범부처 전략회의’ 모두발언에서 “2050년 탄소중립은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대세가 됐다”며 “범정부 추진 체계부터 강력히 구축해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범정부 추진체계 구축과 관련해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대통령 직속 가칭 ‘2050 탄소중립위원회’를 설치할 것”이라며 “에너지 전환 정책이 더 큰 힘을 받을 수 있도록 산업통상부에 에너지 전담 차관을 신설하는 방안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경제 영역에서 저탄소화를 추진해 나가겠다. 에너지시스템의 구조적 전환이 그 출발점”이라며 “화석연료에서 신재생에너지로 에너지 주공급원을 전환하고 전력망 확충과 지역 중심의 분산형 전원 체계를 확산할 것이며, 재생에너지·수소·에너지 IT 등 3대 에너지 신산업 육성에 주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2050 탄소중립 전략회의’ 내용을 살펴 본 하재주 회장은 본지와 언택트(Untacted) 인터뷰에서 “신재생에너지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온실가스, 미세먼지, 경제성 등 최대의 강점을 가진 원자력을 포기하고 무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많은 부작용에도 눈을 감고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것이 너무나 닮았다”고 언급했다.

탈(脫)원전으로 큰 사회 문제가 된 에너지전환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탄소제로를 기본방향으로 에너지믹스를 타에너지와 협력해 환경, 경제, 산업 등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 그러나 현 정부는 에너지전환 정책이 가져올 결과에 대한 수많은 전문가들의 객관적인 예측과 제언에도 불구하고 이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하 회장은 “궁극적으로 화석연료는 대체될 수밖에 없다”면서 “이에 학회는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과 경제성을 원자력 부하추종과 결합하고, 수소생산으로 원자력과 타에너지간 상호 공존하며 탄소제로를 향한 ‘K-에너지전환’이 연착륙하는 방법 등을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하 회장은 신한울 3ㆍ4호기와 계속운전, 그리고 사용후핵연료 등 원자력현안도 소홀히 할 수는 없기에 국민눈높이에 맞는 ‘원자력바로알리기’를 더 적극적으로 펼치겠다는 뜻도 밝혔다.

하 회장은 “원자력계는 탈원전 정책으로 원자력산업의 붕괴와 일자리 상실 등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데, 코로나19 대유행까지 겹치면서 현실은 고사(故事) 직전까지 와 있다”면서 “비록 외부적으로 어려운 현실이지만 사실 가장 두려운 것은 망각하고 길들여지는 것이다. 하나로가 일 년 내내 정지해 있고, 원전이 사소한 기기결함에도 몇 달씩 가동을 못해도 이제는 익숙하게 돼 버렸다”고 탄식했다.

그는 “그러다가 부품은 수입에만 의존하며 해외수주의 꿈도 못 꾸고, 또 원자력 연구비가 급감해도 그냥 주는 만큼 적당히 눈치껏 순응하다가 때 늦은 후회는 안할지 등 기우겠지만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지속적으로 힘들면 누구나 그렇게 변할 수 있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하고 지치지 않게 서로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격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 회장은 “이제는 염려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골든타임을 원자력계와 함께 지켜내고 싶다”며 “각자의 자리에서 소중한 재능을 나눠 주면 에너지안보도 지키고, 대한민국의 에너지인 원자력도 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탈원전 NGO단체들이 국가의 미래를 생각해서 원자력안전과 사용후핵연료에 대해 우려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쉽지는 않겠지만 평행선인 지금의 난관을 대척관계보다는 협력관계로 협업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고 덧붙였다.

한편 하재주 학회장은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 박사,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원자력공학 석·박사 취득 후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안전연구, 신형원자로 개발 등의 분야에서 본부장 등의 주요 직책을 두루 거쳤으며, OECD/NEA 원자력개발국장,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을 역임했다. 한국 최초의 원자력시스템 일괄수출인 요르단 연구용원자로 건설 프로젝트의 한국컨소시움 대표로 수주를 견인했고, 세계최초로 설계인허가를 받은 소형원자로인 SMART를 사우디에 진출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

또 원자력학회에서는 제19대 사업이사, 원자력열수력 및 안전 연구부회장을 역임하고, 제32대 수석부회장 겸 원자력이슈 및 소통위원회 위원장직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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