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Sharm el-Sheikh)에서 열린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는 당초 폐막일을 이틀 넘긴 지난 20일 폐막했다. COP27은 탄소중립(Net Zero·넷제로) 달성과 안정적인 전력공급, 에너지안보까지 다양한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원자력의 잠재력’이 다시 주목을 받았다.

실제로 COP27 현장에서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원자력(#Atoms4Climate)’ 세션이 별도로 마련됐으며,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국제에너지기구(IEA), 세계원자력협회(WNA) 등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면 원자력발전의 증가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또 국제원자력산업계는 “2030년까지 에너지 그리드에서 원자력의 기여도를 높이기 위해 신규 원자력 건설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가속화할 것 촉구한다”는 공동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백원필 한국원자력학회 제35대 회장 ⓒ사진=인사이트N파워
백원필 한국원자력학회 제35대 회장 ⓒ사진=인사이트N파워

백원필(사진) 한국원자력학회 제34대 회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전 세계적인 에너지공급 차질은 각국의 에너지안보 전략 재고, 연료 수입선 다변화 등에 영향을 미쳤다”면서 “LNG 등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면서 에너지전환을 가속하고자 일부 국가들은 원자력발전 비중 확대가 논의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백 회장은 “지난 7월 유럽의회를 통과한 ‘EU택소노미’에 원자력을 공식적으로 포함시키면서 결국 EU에서도 현재 운영중인 원전과 향후 신규로 건설될 원전들이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 위기 극복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원자력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인정받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에너지안보와 탄소중립은 필요성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원자력이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거나 국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지 못한다면 그 역할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

이에 백 회장은 “원자력의 역할은 멈추지 않고 계속 확대될 것이다. 수소생산, 해수담수화, 화학공정을 위한 열공급 그리고 해양 및 우주동력원, 극지(오지) 전력공급을 위한 원자력 이용의 확대가 가시권에 들어왔다”면서 “특히 우주 개발에서 원자력은 대체불가능한 에너지원”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우주로 올라간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Ⅱ)’에서 분리된 성능검증위성에는 국내 기술로 개발한 ‘원자력전지’가 탑재됐다. 원자력전지는 방사성동위원소(플루토늄-238, Pu-238)가 붕괴하면서 발생하는 열로 전력을 생산하는 장치이다. 실제 우주의 극한 환경에서 안정적인 전력을 생산하는 실증에 성공해 미국, 러시아에 이어 ‘우주 원자력전지’를 확보하는 세 번째 나라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아울러 백 회장은 “지난 5년간의 탈(脫)원전 아픔을 교훈삼아 원자력 기술기반과 국민 지지기반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학회 임기동안 주요 원자력 이슈들에 대한 기술적, 정책적 토론의 장을 제공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소통을 확대함으로써 원자력ㆍ에너지 정책 싱크탱크로서의 ‘학회 역할’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9월 1일 ‘제35대 한국원자력학회장’에 취임한 백원필 회장은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학사와 KAIST 원자력공학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원자력연구원 부원장과 원자력안전위원회 원자력안전전문위원회 위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원자력이용개발전문위원회 위원, 국민안전처 정책자문위원, OECD 원자력기구(OECD/NEA) 원자력시설안전위원회 부의장 등을 역임했다. 아울러 외교부  활동하고 있다. ⓒ사진=김소연 기자
지난 9월 1일 ‘제35대 한국원자력학회장’에 취임한 백원필 회장은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학사와 KAIST 원자력공학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원자력연구원 부원장과 원자력안전위원회 원자력안전전문위원회 위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원자력이용개발전문위원회 위원, 국민안전처 정책자문위원, OECD 원자력기구(OECD/NEA) 원자력시설안전위원회 부의장 등을 역임했다. 아울러 외교부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김소연 기자

2030년대 세계 주도할 SMR…적기 인허가와 실증로 건설이 핵심
원안위-KINS, 원자력‧방사선 안전에 ‘과학과 사실’ 수호자가 돼야

-한국원자력학회장으로 취임한지 80여일이 지났다. 소감과 더불어 비록 1년이지만 앞으로 학회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
“매우 중요한 시기에 원자력학회장을 맡게 돼 어깨가 무겁다. 그러나 원자력이 훨씬 더 힘들었던 작년 봄에 차기 학회장인 수석부회장을 맡겠다고 나섰던 만큼 6000여 회원들과 함께 한국 원자력의 재도약을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무엇보다도 탈(脫)원전 정책으로 취약해진 원자력기술과 산업의 기반을 강화하고, 국민과 함께하는 원자력의 위상을 다시 세우기 위해 노력하겠다. 지난 9월초 학회장 취임 직후부터 10월 정기총회 및 추계학술대회 준비로 매우 바빴다. 이제 외부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한다. 학회 지역지부와 협력해 원전 주변 지역과의 소통에도 힘쓰고, 국제 위상을 높이기 위한 활동도 재개할 계획이다.”

-윤석열 정부 취임 이후 국내 원자력계가 ‘원자력해빙기’를 맞았다고 평가되고 있다. 특히 정부는 EU 사례를 참고해 원자력발전을 포함시킨 ‘K-택소노미’를 발표했는데, 지금의 원자력계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원자력발전을 포함시킨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동의하기 어려운 부대조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 원자력이 재도약의 기회를 맞은 것은 틀림없지만 안타깝게도 그 기반이 매우 취약하다. 탈원전 이전에도 세계 최고수준의 상품과 공급체계를 갖고 있었던 데 비해 이를 뒷받침하는 원천지식이나 과학기술·정치사회·제도·문화적 기반은 취약했었다. 지난 5년간 거의 모든 부분이 더 나빠진 상태이다. 그래도 다수의 국민이 원자력을 지지하고 있고, 대다수 원자력인(人)들도 내부의 문제를 자각하고 있어서 다행으로 생각한다. 막대한 가치를 지닌 ‘한국 원자력’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려면 원자력인 스스로의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의 노력으로 원자력 기술·산업 기반과 국민 지지기반이 확고해지면 2030년대에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한국 원자력에게 커다란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많은 나라에서 ‘원자력 없이’는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월성원전 부지 내 삼중수소 검출과 관련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를 위해 민간조사단을 구성, 조사를 진행하고 있음에도 ‘방사능공포’ 여론몰이는 멈추지 않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더 책임있게 문제를 다뤄야 한다. 원안위는 원자력 안전에 국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국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한편으로 원자력 및 방사선 안전에 ‘과학과 사실’의 수호자가 돼야 한다. 이것이 500여명의 전문가가 있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을 산하 전문기관으로 두고 있는 이유이다. 원안위와 KINS의 더욱 책임있고 용기있는 역할을 기대한다.”

-원전 안전규제 시 대중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여론이 규제기관의 결정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 규제기관의 결정은 오로지 법과 기술적 타당성에 근거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원자력계와 국민들 모두에게 불신을 받고 있지 않은가.
“어느 정도는 국민여론이 규제기관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원자력 이용에서 요구되는 안전수준을 궁극적으로 국민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규제 의사결정의 가장 중요한 근거는 관련 법규와 규정, 과학과 사실이 되어야 한다. 원자력 안전규제는 원자력 이용 분야에서 국민을 보호하는 경찰과 같은 역할을 한다. 별도의 전문조직으로 운영되는 것은 고도의 과학기술적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본질에 충실하는 것이 중요하다. 원안위는 ‘전문성, 독립성, 투명성, 공정성, 신뢰성’을 핵심가치로 천명하고 있는데,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U.S.NRC)는 ‘독립성, 공개성, 효율성, 명확성, 신뢰성’을, 핀란드 방사선·원자력안전청(STUK)은 ‘전문성, 공개성, 용기, 협력’을 핵심 원칙으로 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STUK에서 ‘용기’를 포함한 것에 감명을 받았다. 국내외 규제기관들이 천명하고 있는 이러한 공동가치들을 잘 구현한다면 국민과 국토환경을 효과적으로 보호하면서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SMR을 비롯한 ‘제4세대 원자로(GenⅣ)’ 가 주목받고 있다. 더 안전한 원자로를 향한 기술적 진보는 반가운 일이지만 한편으론 ‘1세대 원자로’ 회귀(回歸) 현상으로 보인다. 과연 4세대 원자로는 3세대 이하 원전에 비해 근본적으로 향상됐다고 평가할 수 있는가. 또한 한국형 SMR의 미래를 어떻게 보시는지, 아울러 성공적인 수행을 위한 제언이 있다면.
“소형모듈원자로(SMR), 소듐냉각고속로(SFR), 초고온가스로(VHTR) 등은 제4세대 원자로로 개발되는 원자로들이 결국 1950~1960년대 모두 연구하다가 포기했던 것이 아니냐는 부정적 시각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지만 “그때는 틀렸지만 지금은 맞다”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동안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생각해보면 1세대 회귀로 보는 것은 맞지 않다. 무엇보다도 컴퓨터를 비롯한 IT 기술의 발전이 원자로 설계와 제작, 운전 환경을 혁명적으로 변화시켰고, 재료기술을 비롯한 기반기술도 크게 발전했다. 연구자 입장은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를 위해서는 원자력이 반드시 필요하고, 대형 원전과 더불어 SMR이 함께 그 역할을 해야 하며, 상업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SMR이 현재 기술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대형 집중식 발전원으로서는 대형 원전보다 경제성이 불리하지만, SMR은 출력조절과 자동운전이 쉽고, 에너지 수요지 인근에 건설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충분한 수준의 안전성이 확보된 SMR이라면 에너지나 수소를 많이 필요로 하는 제철소나 화학시설, 데이터센터, 반도체 공장 등의 울타리 안에도 건설될 잠재력이 있다. 물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중의 수용성과 새로운 기술의 검증과 인허가 문제 등이 있다. 국내의 경우 경쟁력 있는 ‘혁신형 SMR’의 개발 가능성은 의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2030년대에 세계를 주도할 5종 내외의 주력 SMR로 자리잡기 위한 적기 인허가와 실증로 건설이 중요한 도전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SMR의 실증에서는 실제 수요자이기도 한 민간 기업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을 목표로 세웠다. 자국의 노형(설계, 시공, 운영, 정비, 기자재 제조 등)으로 단독 입찰보다 국가간 협업(기술력과 자본이 결합된)을 통해 공동 입찰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을 어떻게 보는가.
“미국 등 서방 선진국들이 제 역할을 해야만 원자력의 미래가 있다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중국과 러시아에 원자력의 미래를 맡겨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한국 독자적으로 자유세계 원자력을 책임질 역량을 갖추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쟁자이기도 한 미국, 프랑스, 영국, 캐나다 등이 원자력 개발·이용을 본격화하는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한다. 미국 등과의 국가간 협업체계 구축은 매우 중요하며, 이를 통해 우리나라가 취약한 핵연료 공급 문제나 안보 문제의 한계를 보완할 수도 있다. 다만 공급국들간의 실질적인 협업은 흔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새로운 모델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마찰이 노정될 수 있고, 이에 대해 인내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원전 수출에 있어서도 세계적으로 위상이 높은 민간 대기업들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원자력산업이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호재로 삼기보다 미래를 대비해야 할 시간”이라는 견해도 있다. 지속가능한 ‘K-원자력’으로 바로서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옳고 그름이나 우선순위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일로 다툴 여유가 없다. 원자력산업 생존에 필요한 시급한 일들을 서두르면서 동시에 미래 대비 기반을 튼튼히 만들어가야 한다. 큰 방향에서 어긋나거나 작은 이익에 매몰되지 않도록 서로 소통하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일은 크게 훼손된 원전산업체계를 정상화하는 것이다. 신한울 3·4 건설 재개, 가동원전 계속운전 추진 및 정비활동 강화, 체코·폴란드·영국·사우디 등에서 ‘한국형 원전’ 수출 등 가시적인 진전이 중요하고, 정부와 한수원의 자금 지원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원자력의 지속가능한 발전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원자력 기술을 더욱 혁신하면서 원자력 중대사고와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해소하고, 상생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장기적인 국가 에너지믹스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원자력 소통은 기술공학적 안전성과 더불어 사회문화적 안심을 동시에 충족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국내 원자력계 당면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원자력계의 핵심단체인 ‘한국원자력학회’의 역할이 더 부각되고 있는데, 과연 어떻게 ‘국민의 공감’을 얻을 것인가.
“원자력 안전에 대한 국민의 공감과 지지 없이는 원자력 기술을 널리 이용할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실체적 안전을 달성하고 국민과 잘 소통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못지않게 소통자가 국민의 신뢰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원자력학회는 이슈위원회와 소통위원회, 지역지부를 잘 연계하고, 때로는 연관 학회들과도 협력하면서 체계적인 노력을 펼칠 생각이다. 작년에 수석부회장으로서 각 대선 후보진영에 전달할 원자력정책 제안서 개발을 주도했었는데,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결국에는 12개 단체가 함께하고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학회가 원자력에 관련해 국민과 정부에게 가장 신뢰받는 전문가단체로 자리 잡으면서 효과적인 소통체계를 구축하는데 의미있는 기여를 하고 싶다. 차기년도 활동계획과 예산안에 관련 부문을 크게 강화했다.”

-끝으로 오는 30일 두 번째 생일을 맞은 인사이트N파워 독자들과 첫 대면이다. 희망이 될 메시지를 전달한다면.
“한국 원자력은 무(無)에서 기적(Miracle)을 만든 분야이다. 아무도 믿지 않던 기술 자립과 원전 수출을 달성하고, 자원빈국인 우리나라에서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에너지 공급의 첨병 역할을 해왔다. 우리가 소소한 이익에 매달리지 않고 국민과 소통하고 타분야와도 협력해나간다면 우리 원자력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인류를 위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믿는다. 원자력계에서는 자신에게 엄격하고 남에게 너그러운 긍정적 의미의 ‘이중잣대’가 힘을 얻길 기대한다. 우리 모두 역지사지와 타산지석을 마음에 새기면서 함께 나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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