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기춘 한국원자력연구원 혁신원자력시스템연구소 자율운전연구실 박사
권기춘 한국원자력연구원 혁신원자력시스템연구소 자율운전연구실 박사

2000년 초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서 실시한 1~2년 단기 원자력실용화사업 수요조사에 한국전기연구원의 김국헌 박사가 연구기간 6년, 600억에 ‘원전 계측제어 Total System’을 개발하겠다는 제안서를 제출한다. 당시로서는 ‘말도 안 되는’ 그 제안은 우여곡절 끝에 몇 개월 후 선정돼 원전 계측제어시스템 개발 기획과제(과제책임자=오승록 단국대교수)가 착수된다. 당시 이문기 과학기술부 원자력정책과장은 엄청난 열정으로 기획과정을 지원해 주었다.

그 해 여름부터 시작된 기획이 마무리되고 단장에게 연구진 구성과 연구비 배분 및 목표설정 등의 전권을 부여하는 당시의 프론티어사업단과 유사한 형태의 ‘원전계측제어시스템개발사업단(KNICS, Korea Nuclear I&C System)’을 발족하고, 2001년 4월에 김국헌 한국전기연구원 박사가 사업단장으로 선임됐다. 비로소 2001년 7월에 원전계측제어시스템개발사업단(KNICS) 사업이 착수됐다.

착수 당시에는 매칭펀드를 부담하고 기술 개발 완료 후 상용화를 담당할 산업체에서는 원전 MMIS는 개발 성공 가능성도 적고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해 적극적인 참여를 꺼리는 실정이었다. 사업단장 이하 핵심 참여원이 어렵게 몇몇 산업체를 참여하도록 설득해 최종적으로 이 사업에는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전기연구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한전전력공사 전력연구원, 한국수력원자력 원자력발전기술원, 기초전력연구원 등 연구기관과 두산중공업(주), (주)포스콘(포스코ICT, 삼창기업을 거쳐 現 수산ENS), (주)우리기술, (주)우진, 한국전력기술(주) 등 산업체 그리고 국내 대학을 포함해 많은 산학연 기관이 개발에 참여했다.

원전 디지털 안전등급 제어기기를 보유한 국가는 미국과 프랑스뿐이며, 이들 국가들은 안전등급 제어기기만을 판매하지 않고 안전계통 캐비닛 전체를 제작해 공급함으로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었다. 만약 이들 원전 선진국에서 제어기기를 구입하는 경우를 가정하더라도, 이들 제어기기를 활용해 디지털 안전계통을 설계하게 되면 이들 국가에서 이미 확보한 계통설계 특허를 벗어날 수 없으므로 결국은 기술적으로 종속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이러한 국제적인 상황에서 ‘원전 MMIS’ 패키지를 국산화하기 위해서는 인허가를 획득해야 하는 가장 핵심 기술인 안전등급 제어기기를 우선적으로 개발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었다.

KNICS 연구결과물 ⓒ사진제공=권기춘 박사
KNICS 연구결과물 ⓒ사진제공=권기춘 박사

KNICS 사업은 원자력연구개발기금 약 500억 원이 투입돼 2001년 7월부터 2008년 4월까지 6년 10개월 동안 수행됐다. 먼저 1단계 3년은 과학기술부의 지원으로 시작됐으나, 연구목표가 상용화를 추구한 관계로 2005년부터 시작된 2단계 4년은 지식경제부로 관리가 이관됐다. 처음에 지식경제부로 사업이 이관됐을 때는 계속적인 지원과 사업의 지속성 등을 걱정했으나 다행히도 지식경제부에서 관심과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다. 결과적으로 상용화에 성공한 것도 사업이 지식경제부로 이관된 덕을 많이 본 것 같다.

KNICS 사업을 통해 원자력연구원이 두산중공업 및 포스콘과 공동으로 안전등급 제어기기 및 디지털 안전계통을 개발하고, 한전 전력연구원이 (주)우리기술과 공동으로 비안전등급 제어기기를, 그리고 전기연구원이 제어봉제어계통 및 출력제어계통 개발을 담당했다. 이에 추가해 우진은 그동안 웨스팅하우스가 독점 공급하던 RSPT(Reed Switch Position Transmitter) 및 HJTC(Heated Junction Thermocouple)와 같은 센서류를 국산화하므로 원전 MMIS 전체 패키지를 국산화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

KNICS 사업에서 디지털 안전등급 제어기기로 프랑스, 미국에 이어 3번째로 PLC(Programmable Logic Controller)를 개발했으며, 이를 활용해 원자로보호계통과 공학적안전설비-기기제어계통을 개발했다. 이들 안전등급 제어기기 및 디지털 안전계통에 대해서는 특정기술주제보고서(Topical Report)를 작성해 정부에 인허가를 요청해 2009년 2월 규제기관의 심사를 거쳐 정부로부터 인허가를 획득했다. 개발된 연구결과물에 대한 원전 운전이력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추진돼 안전등급 제어기기인 POSAFE-Q PLC를 울진1발전소의 노심냉각감시계통(CCMS)에 시범적용 하기도 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을 주관기관으로 포스코ICT(당시 기업명)와 두산중공업이 공동으로 개발한 디지털 원자로 안전계통은 적용 전에 필수적으로 규제기관의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 MMIS의 핵심 계통으로 2년여에 걸친 규제기관의 엄격한 심사로 인해 개발에 참여한 인력들은 밤잠을 설쳐가며 인허가 현안에 대응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문서를 만들어 내는 고생을 감수했다.

비안전등급 제어기기인 분산제어시스템(DCS, Distributed Control System)은 1단계에서는 한전 전력연구원의 주관으로 2단계에서는 우리기술의 주관으로 개발했으며, DCS를 고리2발전소의 수처리계통에 시범 적용해 성능을 입증했다. 전기연구원과 두산중공업에서 DCS를 기반으로 제어봉 전원 출력회로의 이중화 특징을 가진 원자로 제어봉 구동장치 제어시스템(Control Rod Control System)과 APR1400용 원자로 출력제어계통(Power Control System)을 개발했다. 원자로 제어봉 구동장치 제어시스템은 신규원전 적용뿐만 아니라 고리 1ㆍ2호기 교체용으로도 적용됐다. KNICS 사업을 통해 개발된 제어기기 및 계통을 활용해 다음 그림과 같은 원전 디지털 MMIS 패키지를 완성했다.

원전 디지털 MMIS 패키지 ⓒ사진제공=권기춘 박사
원전 디지털 MMIS 패키지 ⓒ사진제공=권기춘 박사

KNICS 사업 종료후 한국원자력연구원은 디지털 안전등급 제어기기 기술은 포스코ICT로, 디지털 원자로 안전계통 기술은 두산중공업으로 기술이전해 두 산업체를 중심으로 상용화를 완성했다. 또한 전기연구원은 원자로 제어봉 구동장치 제어 기술과 원자로 출력제어 기술을 두산중공업으로 기술을 이전해 가동원전 및 신규원전인 ‘신한울 1ㆍ2호기’에 적용하게 됐다.

현재 한국형 ‘원전 MMIS’가 최초로 적용된 신한울 1호기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운영허가에 대한 심의를 앞두고 있다. 이에 본지는 권기춘 한국원자력연구원 박사의 기고를 연재로 게재해 MMIS 개발의 지난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더불어 국내 원전 I&C 기술의 바람직한 발전방향 등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본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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