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시설 인허가 심사에 활용되는 기술기준과 심사지침의 역할과 위계를 다시 정비하는 작업이 본격 추진된다. 원자력안전위원회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지침 43개를 대상으로 규정체계를 재정비해 법적 기준과 규제지침, 심사 실무자료 간 역할을 명확히 하겠다는 방침이다.
원안위는 26일 열린 제2026-4회 회의에서 ‘원자력안전규제 기술기준 규정체계 정비 계획(안)’을 보고받고, KINS가 원자력시설 인허가 안전심사 과정에서 활용해 온 규제지침 및 심사지침을 원자력안전법령 체계 안에서 보다 명확히 관리하는 방향으로 제도 정비를 추진하기로 했다.
이번 정비의 핵심은 인허가 판단의 실질적 기준이 되는 사항은 원안위 기술기준으로 상향하고 그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일반적인 규제 해석과 기술적 방법론, 심사 실무자료는 각각 다른 위계로 나눠 관리하는 데 있다.
그동안 KINS는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위탁받은 인허가 심·검사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국내외 심사 경험과 기술적 방법론을 일반화한 지침을 만들어 활용해 왔다. 다만 원안위는 이 과정에서 법령체계에 직접 근거가 없는 KINS 지침이 실질적인 허가 판단 기준처럼 활용된 사례가 있었기에 기술기준의 법적 위상과 심사 실무자료 간 경계를 보다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원안위가 제시한 기본 방향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KINS 지침 가운데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기준은 ‘원안위 기술기준’으로 상향해 규칙 또는 고시 형태로 관리할 계획이다. 즉 원자력시설 인허가 심사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충족해야 하는 안전기준은 원안위의 공식 기술기준으로 정비해 법적 위상을 보다 명확히 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기술기준을 만족하기 위한 일반적인 기술적 방법론과 해석 방식, 규제 입장 등은 새로 만드는 ‘원안위 규제지침’으로 관리한다. 또 KINS가 안전심사 과정에서 실제로 활용하는 구체적인 기술적 방법과 해석은 ‘KINS 매뉴얼’로 제정해 운영할 예정이다. 내부 업무처리 절차는 별도의 ‘KINS 업무편람’으로 분리한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법적 기준은 원안위 기술기준 ▲기준 충족을 위한 일반적 규제입장은 원안위 규제지침 ▲심사 실무에서 활용하는 세부 기술 방법은 KINS 매뉴얼 ▲내부 행정 절차는 KINS 업무편람으로 각각 역할이 구분되는 구조가 된다.
이번 정비는 단순한 문서 명칭 변경이 아니라 인허가 심사의 법적 정합성과 규제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재 원안위는 법과 시행령, 시행규칙 및 이에 근거한 위원회 규칙·고시 형태의 기술기준에 따라 규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반면 KINS의 규제지침과 심사지침은 대외적 구속력이 없는 심사자용 가이드 성격으로 운영돼 왔다.
그러나 실제 심사와 허가 과정에서는 일부 KINS 지침이 사실상 기준처럼 기능하면서, 법적 위계와 실무 운용 사이의 간극이 꾸준히 문제로 지적돼 왔다. 이에 원안위는 이번 정비를 통해 그동안 심사자 내부자료 성격이 강했던 KINS 심사지침도 보다 투명하게 공개하기로 했다. 정비가 완료되기 전이라도 현행 KINS 심사지침을 원자력안전기준 종합관리 시스템을 통해 공개하고, 향후 새로 정리되는 원안위 규제지침과 KINS 매뉴얼도 정비가 완료되는 즉시 순차적으로 공개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인허가 심사 과정에서 어떤 기술적 해석과 판단이 적용되는지 외부에서도 보다 명확히 확인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올해 경수로형 원전부터 착수, 2030년까지 단계적 정비
전문위원회ㆍ실무검토위 운영…규정 관리체계 제도화

정비 대상은 총 43개 KINS 지침으로, 전체 분량은 1만 쪽이 넘는다. 원안위는 올해 활용도가 가장 높은 경수로형 원전 관련 규제지침과 심사지침 정비를 우선 추진하고, 이후 단계적으로 나머지 지침을 정비해 2030년까지 규정체계 재정비를 완료할 계획이다.
올해는 경수로형 원전 규제지침과 안전심사지침을 중심으로 세부 정비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향후 원자력·방사선 분야 전반으로 정비 범위를 넓혀나갈 방침이다. 특히 원안위는 인허가 심사에 자주 활용되는 경수로형 원전 관련 지침부터 손질함으로써, 기술기준과 규제지침, 심사 실무자료 간 역할 정립의 기준 모델을 먼저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원안위는 이번 규정체계 정비를 뒷받침하기 위해 관리 절차도 함께 제도화할 계획이다. 먼저 원안위 기술기준은 앞으로 원자력안전전문위원회에서 반드시 검토하도록 해 적절성 심사를 강화하고, 전문위원회 산하에는 ‘기술기준 실무검토위원회’를 운영해 외부 전문가 검토도 강화하기로 했다.
또 원안위는 별도 훈령을 제정해 원안위 규제지침과 KINS 매뉴얼의 제·개정 절차, 관리기준, 대외 공개 기준 등을 명문화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기술기준과 규제지침, 매뉴얼 간 위계를 명확히 하고, 인허가 심사에 활용되는 기술문서 관리체계를 보다 체계적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최원호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은 “기술기준 규정체계를 보다 명확히 함으로써 인허가 심사 과정의 투명성이 강화되고, 원자력안전규제에 대한 신뢰도도 제고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조속히 정비를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