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과 더불어 '脫원전 탈출'을 앞둔 원자력계 안팎의 반응에 대한 원자력종사자 무명씨(無名氏)의 '외침'을 그대로 싣는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편집자 주]

영화 ‘판도라’를 다시 본다. 예전에 봤을때도 꽤 잘 만든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듯이, 대부분의 드라마는 허구적 요소를 포함하여 이야기의 극적인 전개를 지향한다. 그 뿐이다. 그런데 이런 드라마가, 다큐도 아닌 드라마가, 현실 세계의 주요 결정에 크게 영향을 끼치리라고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그것도 왕정도 아닌 민주공화국에서 상상도 못 했다.

과학이 실종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정상화를 기대하고 있지만 마냥 좋아할때는 아니다. 반성을 해야 한다. 판도라가 정책에 영향을 끼칠 때 왜 미온적으로 대처했는지, 사실관계를 밝히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왜 못했는지, 그로 인한 결과가 얼마나 참혹했는지 되돌아 봐야 한다.

공공재를 생산하는 공공부문 종사자들은 순진하다. 상식적으로 맡은 일만 잘 하면, 주어진 사명에 충실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면 다들 이해해 줄 것이고, 아무리 외부 환경이 바뀌어도 달라질 것은 없으리라 순진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순진한 생각이(순진한건 자랑이 아니다) 과학과, 과학에 경제성을 조합한 공학의 영역이 아닌, 다른 잣대로 우리가 하는 일의 의사결정이 좌우되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몇년간 겪어야 했다. 그리고 힘들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유도 알지 못한채 아파했다. 하지만 반성을 해야 한다. 사실 우리의 나이브함이 자초한 일이었다.

한편 과거로 돌아갈 생각은 버려야 한다. 원래 익숙한 ‘정(正)’을 벗어나야 한다. 환경은 분명이 변하고 있다. 그러니 ‘반(反)’을 겼었으니, 익숙한 ‘정(正)’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은 말고, 변화를 예측하고 ‘합(合)’의 방향으로 발전을 지향해야 한다.

에너지 산업의 가장 중요한 대명제는 ‘탈탄소’다. 또한 신재생의 확대 또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값싼 전력 생산을 통해 산업발전에 올인했던 과거의 방식이 20년, 30년후에도 옳으리라는 생각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방식이 지금까지는 옳지만,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지속가능한지 고민해 봐야 한다. 즉 탈탄소와 전력소비 절감은 원자력과 같은 발전만의 영역이 아니라 그리드, 즉 전력산업 전체의 문제로 보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원자력이 발전하는 방향은 무엇인가? 에너지 정책은 탄소저감이라는 국제적인 가치와 함께 안보와 산업경쟁력이라는 국가별 특성을 고려하여 전략적, 중장기적 최적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원자력은 에너지 정책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우선 값싼 전력생산을 통해 국가 산업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고 탄소감축에 기여하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신재생 등 차세대 발전기술개발의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다음으로 컨벤셔널한 대형원전 외에도 소형원전 등 다양한 라인업을 구축하여, 똑똑한 그리드 구성의 한축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끝으로 발전외 에너지원으로서 무궁무진한 쓰임새를 현실화해야 한다.

이것이 원자력 업계가 지향해야 할 정(正)-반(反)-합(合)의 과정이다. 걱정되어 다시 말하지만, 원자력은 절대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된다. 가장 좋은 에너지로 언제까지 역할을 할 수는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 나라 현실에서 원자력 밖에 대안이 없다고, 물론 지금은 그렇지만, 계속 그럴 것이라 생각해선 안된다. 신재생 등 미래 에너지 기술을 개발하는데 기여하는 숨은 공로자가 되어야 한다.

부디 원자력산업은 국가경제와 국민행복을 위한 작지만 소중한 자원으로써, 오로지 과학과 경제의 영역에서만 거론될 뿐, 정치적 쟁점에서는 사라졌으면 하는 생각이다. 우리 원자력 종사자는 숨어서 조용히 역할을 수행하겠다. 정치를 하고 싶으신 분은 가셔라!

(※본 투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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