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력산업계의 대들보인 전력산업기술기준 KEPIC(Korea Electric Power Industry Code)의 개발은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한창 진행되던 198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 프랑스, 캐나다 등 다양한 국가의 설비기준을 적용한 많은 발전소가 건설 중이었다.

각 발전소마다 서로 다른 국가의 기준이 적용되다 보니 기술자립과 국제경쟁력 확보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에 우리만의 기준을 가질 필요성이 제기됐다. KEPIC은 이러한 필요성에 의해 개발돼 발전소 건설, 운영을 비롯해 전력설비 표준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대한전기협회는 1995년 6월 정부로부터 KEPIC 전담기구로 인정받았으며, 같은 해 11월 처음으로 KEPIC 1995년판을 발행한 이래 현재까지 5년 주기로 판(Edition)을 발행하고 있다. 발행 판을 지속적으로 유지, 보완해 매년 추록(Addenda)을 발행하는 한편 이를 후속 판에 반영하고 있다.

KEPIC은 원자력·화력발전소, 송·변·배전설비 등 모든 전력산업 설비에 적용된다. 특히 원전의 경우에는 한울 5ㆍ6호기(OPR1000) 건설 시 시범 적용을 시작으로 신규 건설되는 모든 원전(APR1000, APR1400)에 전면 적용되고 있다. 2009년 수주한 국내 최초의 수출 원전인 UAE 바라카 원전에도 적용됨으로써 국제화의 초석을 마련한 바 있다.

화력발전의 경우에는 원전과 달리 고시에 따른 강제 사항이 아니지만 최근 들어 발전사업자들과 설계기관에서 유용성을 인식하고 적용을 확대하는 추세다. 화력발전소의 건설 및 운영과 관련한 적용표준의 결정은 사업자 선택 사항인데, 2010년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 남부발전의 영월천연가스발전소가 최초로 전면 적용한 바 있다. 신보령화력 1·2호기는 최신형 1000MWe급 초초임계압 발전소로서는 처음으로 KEPIC을 전면 적용했다. 이밖에도 영흥 3·4호기, 하동 7·8호기, 서울복합 1·2호기 건설에도 KEPIC이 적용됐다.

민간화력발전사인 강릉에코파워와 고성그린파워도 2014년 1000MWe급 화력발전소 건설에 KEPIC을 전면 도입했다. 또 성능시험표준 및 유지정비표준 등이 2010년판으로 개발됨으로써 발전회사는 물론 유지정비 회사와 대형 건설사들도 적용기반 확산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

반면 송·변·배전 분야의 경우에는 IEC 국제표준을 채택하고 있는데, KEPIC은 ASME, IEEE와 같이 민간표준이기에 현재로서는 일부에서만 적용되고 있다. 이에 전기협회는 송·변·배전 분야 국가표준개발협력기관(COSD) 업무 수임을 통해 관련 표준의 영역 확대를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KEPIC은 성능이나 효율성보다 안전성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기준이지만 다양한 부가가치도 창출하고 있다. 하나의 프로젝트 수행에 필요한 수많은 표준들을 집대성해서 이를 단일 패키지화한 전력산업계의 ‘전용표준’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KEPIC에는 전력설비의 건설 및 운영에 필요한 ▲품질보증(Q) ▲기계(M) ▲전기 및 계측제어(E) ▲S(구조) ▲N(원자력) ▲F(화재방호) ▲G(환경) 총 7개 분야의 542종(2020년판 기준)의 단위기술기준이 체계적으로 집대성돼 있다. 이는 전력설비 건설 프로젝트에 KEPIC을 적용할 경우 단일 표준의 적용만으로 건설 및 운영 등 전 과정에서 사용자에게 높은 편의성을 제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KEPIC은 관련 산업 활성화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국내 업체들은 원자력 분야 사업 참여에 어렵다는 인식 하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KEPIC은 이런 기업들에게 원자력 사업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줬고 업체들의 활발한 시장 참여는 산업 경쟁력 강화와 원가 절감 효과로 이어졌다. 더불어 전력산업 분야 표준 보유국으로서 국제표준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다졌다는 점 역시 KEPIC의 긍정적 효과로 꼽을 수 있다.

KEPIC은 또 전력설비 건설·운영 관련 경험과 기술을 집약하고 국내 신기술을 표준화함으로써 새로운 기술의 사장을 방지하는 효과도 거두고 있다. 아울러 시공자, 제작자, 검사자, 등록기술자 및 공인검사원 등에 대한 자격제도 운영과 함께 국내 연구개발품의 실용화 지원 및 KS 재료 활용근거 확보 등 국내 제도, 기술 및 재료의 활용을 통한 국산화 제고에도 기여하고 있다. 특히 한글로 된 표준인 KEPIC은 작업인력들의 현장적용에 편의를 제공했으며, 외국 표준 및 인증제도 적용에 따른 부담을 해소하는 등 기술수준의 향상과 품질제고 효과를 거두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변훈석 대한전기협회 KEPIC운영처장 “지금까지 5년 주기로 6회에 걸쳐 KEPIC이 발행됐는데, 특히 7단계 사업으로 추진된 바 있는 KEPIC 2020년판의 경우, 총 7개 분야 542종으로 구성된 8만6007쪽의 방대한 자료로 집대성돼 국·영문판으로 발행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변 처장은 “지난 36년 동안 KEPIC이 거둔 효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로 수치상으로 표현하기 어렵다”면서 “한글로 된 표준인 KEPIC은 작업인력들의 현장적용에 편의를 제공했으며, 외국 표준 및 인증제도 적용에 따른 부담을 해소하는 등 기술수준의 향상과 품질제고 효과를 거두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됐다”고 자평했다.

아울러 그는 “신규표준 개발과 국내 전력산업 기술 집약 시스템 운영 등을 통해 국제표준화 역량을 한층 강화한 것은 물론 사용자의 편의성을 높인 'KEPIC e-Book(PC‧모바일)' 열람 시스템 등 웹 기반 운영시스템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기협회는 ‘KEPIC 2030 중장기계획’을 통해 표준화 역량을 글로벌 탑(TOP)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미래비전을 설정하고 ‘신뢰받는 글로벌 표준화 리더, KEPIC’이라는 주제에 멈출 수 없는 무한도전의 열정까지 담았다. 2030 중장기계획(8ㆍ9단계)에는 ▲표준화 경쟁력 강화 ▲신산업∙신기술 표준개발 확대 ▲국제화 추진 ▲미래지향적 서비스 제공 ▲수출지원 협력 확대 등 5대 전략방향과 총 21개 세부 추진과제를 설정했다.

한편 KEPIC 자격인증제도는 전력설비(특히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성 및 신뢰성 확보를 위해 일정한 자격을 갖춘 조직 및 인원이 KEPIC에서 규정한 업무를 수행하도록 KEPIC 주관기관인 전기협회가 그 자격을 평가 및 관리한다. 1997년 기존의 해외인증자격 전환업체 57개사에서 출발한 KEPIC 자격인증업체는 2023년 6월 기준 KEPIC 자격인증업체는 총 177개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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