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데이스(THE DAYS)’가 글로벌 공개됐다. ‘더 데이스’는 거대한 지진해일(쓰나미)의 직격을 맞은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7일간의 이야기로, 다양한 관점에서 ‘사고의 진실’에 접근한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부를 강타한 규모 9.0의 지진으로 소외전력이 끊긴 원전은 긴급 정지되지만 비상디젤발전기(EDG)를 기동하며 전력이 공급돼 원자로 냉각시스템을 유지한다. 그러나 15km에 달하는 쓰마니가 발전소를 덮치면서 지하실에 위치했던 비상디젤발전기까지 그 기능이 상실돼 계측제어기기가 작동하지 않았다. 이에 주제어실(MCR) 직원들은 방사선피폭을 감수하며 발전소 내부로 진입해 간접적으로 얻은 정보로 사고의 추측과 예측에 대응하는 장면들이 연출됐다.

후쿠시마원전 사고가 초기에 수습되지 못한 이유는 모든 전원이 상실돼 계측제어기기가 작동하지 않아 발전소 내부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연구진이 원전 중대사고시 사고의 수습과 원자로 상태를 지속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중대사고용 사고감시시스템’을 세계최초로 개발했다.

김창회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진계측제어연구실 박사(책임연구원)는 “후쿠시마 사고는 전원상실(Station Black Out)로 인해 계측제어시스템의 취약성을 드러낸 중대사고”라며 “사고 당시 계측제어시스템은 필수 안전변수에 대한 감시뿐만 아니라 밸브, 펌프, 케이블 등 주요 기기의 제어가 불가능한 상태가 지속돼 사고 회복 시기를 놓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김 박사는 “전원상실로 주제어실의 기능을 잃은 상태에서 원자로의 온도, 압력 등 기본적인 상태조차 알기 어려웠는데, 특히 원자로 수위계의 성능이 저하돼 잘못된 값을 표시해 원자로 내에 상당한 양의 냉각수가 존재하는 것으로 오해했었다”면서 이 같은 상황은 드라마에서도 중요하게 부각되며, 고군분투하는 현장(직원)의 모습에 애가 탔다고.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진계측제어연구실 10년 만에 기술개발을 완료한 ‘사고감시시스템’ 구성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진계측제어연구실 10년 만에 기술개발을 완료한 ‘사고감시시스템’ 구성

원전 내 전기기기실에 캐비닛으로 설치된 계측제어시스템은 온화환경에서 동작하도록 설계돼 있지만 후쿠시마 사고와 같은 대형 재난이 발생할 경우 취약성은 존재한다. 이에 전력공급이 끊겨 주제어실(MCR)이 손상되고, 원자로의 상태 확인은 물론 제어가 불가능한 ‘속수무책’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중대사고용 사고감시시스템’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진계측제어연구실 김창회 박사팀은 2012년 6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중대사고 계측 및 감시시스템 기술개발’ 과제를 통해 사고감시시스템 개발을 완료했으며, 상용화를 위한 민간으로 기술이전을 앞두고 있다. 기술이전 완료 후에는 ‘신한울 3‧4호기 최초 적용’이 목표다. 아울러 체코, 폴란드 등 해외 신규원전 및 혁신형 SMR, 가동원전 업그레이드 등에 적용을 추진할 예정이다.

김 박사는 “미국 NRC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핵연료 손상을 감시하기 위한 ‘F 변수’의 중요성과 이 변수를 감시하는 시스템의 생존성 확보 필요성에 따라 IEEE Std. 497-2016을 승인하고, RG 1.97 Rev.5(2019)를 발표했다”며 개정된 규제지침은 “신규원전에 적용해야 한다”고 명시했다는 것.

특히 IEEE Std. 497-2016에는 중대사고용 사고감시시스템의 구성 방안과 주요 요건 및 성능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이 사고감시시스템은 ▲핵연료 손상을 감시하는 계측기 ▲신호처리기 ▲사고감시화면 등으로 구성되며, 독립된 전원 사용과 중대사고 (지진)환경에서 생존성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또 IEEE Std. 497-2016을 참조한 유럽표준 IEC63147에도 “유럽의 신규원전 건설에 이와 같은 사고감시시스템의 적용이 필요하다”고 명시했다.

김 박사는 “최근 체코의 신규원전 건설 제안서에는 안전계통 채널 A/B/C/D 이외에 사고감시 계통 채널 E를 요구했다”면서 “채널 E는 안전 및 비안전계통과 다른 플랫폼(CPU, 통신방식 등)을 사용해 다양성 요건을 만족할 것은 물론 사고 후 완화조치에 필요한 밸브나 펌프 등의 기기를 조작할 수 있는 제어출력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약 10년 만에 기술개발을 완료한 중대사고용 사고감시시스템은 ▲핵연료 손상감시 계측기 (온도, 압력, 수위, 방사능 등 IEEE Std. 497-2016의 F 변수) ▲원전 블랙박스로 명명된 신호처리기 ▲(무선)통신장치 ▲주제어실의 사고감시제어화면 ▲모바일(원격)제어실 등으로 구성됐다.

원전 블랙박스(Blackbox)는 폭발로 인한 고온, 고방사능 유출이라는 극한환경도 생존하도록 설계돼 있다. 사고에 의한 전력공급 차단에 대비해 충전용 배터리로 작동하며, 침수에 대비한 방수(IP 67) 및 수소가스 폭발에 대비한 방폭 기능까지 갖고 있다. 현재 상용화를 목표로 외부고온 200℃, 방사선량 5.0kGy(킬로그레이), 충격강도 12G까지 견딜 수 있는 수준으로 완성도를 끌어올렸다. 통신장치는 원전 블랙박스에서 수집한 사고정보를 제어실로 전송하고, 제어실에서 사고회복을 위해 조치한 명령을 블랙박스로 전송해 펌프, 밸브 등 주요 기기를 제어할 수 있도록 개발했다.

또 모바일 (원격)제어실은 사고로 인해 주제어실(MCR)이 파괴되거나 방사능으로 오염돼 운전요원들이 근무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해 발전소 외부에서 내부사고 상황을 감시하고, 사고 복구를 위한 제어를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제어실이다. 이동 가능한 차량 형태의 모바일 제어실은 방사선오염 및 환경재해로부터 벗어난 지역(최대 30km 외부)에 위치해 1인이 원전 12호기를 동시에 감시·통제할 수도 있다.

중대사고용 사고감시시스템 기술개발에 참여했던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진계측제어연구실 (사진 맨 위 좌측부터) 장인석, 신동성, 김덕현, 김창회, 장통일 연구원 ⓒ대전=인사이트N파워 김소연 기자
중대사고용 사고감시시스템 기술개발에 참여했던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진계측제어연구실 (사진 맨 위 좌측부터) 장인석, 신동성, 김덕현, 김창회, 장통일 연구원 ⓒ대전=인사이트N파워 김소연 기자

한편 세계최초로 개발을 완료한 중대사고용 사고감시시스템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 발행된 ▲일본의 중대사고-계측감시 연구보고서 ▲IAEA 사고감시시스템 보고서 ▲IEEE Std. 497-2016 설계기준 등을 반영했다. 특히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은 지난 2월 1일 ‘원자력발전소 사고감시용 계측설비’에 대한 규제지침을 개정(KINS/RG-N08.08, Rev.2)하고 “신규원전에 중대사고 감시시스템을 적용한다”고 밝혔다. 이 규제지침은 미국 NRC RG 1.97 Rev.5(2006), IEEE Std. 497-2016을 기반하고 있다.

이밖에도 중대사고용 사고감시시스템은 2021년 원전 블랙박스(신호처리기) 및 통신장치 시제품을 제작해 ▲방수/방진 ▲전자파 ▲방사선조사 ▲고온/내진 등 공인기관 기기검증시험은 통과했다. 또 주제어실의 사고감시제어화면은 ‘다수호기 HSI’를 적용한 인적수행도 평가를 만족시켰다.

김 박사는 “지난 10년 전 세계 어떤 연구자들보다 빠르게 기술개발을 추진했고, 그 결과물의 최종목표는 (민간)산업체로 기술이전을 통한 상용화 제품을 완성하고, 국내 및 해외원전 현장에 적용해 사고로부터 안전하게 원자력발전소를 보호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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