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원자력산업을 뒤흔든 ‘부품 위변조 사건’ 이후 도입된 이른바 ‘원전감독법’이 시행 10년을 맞았다. 비리 근절과 신뢰 회복이라는 시대적 요구 속에서 탄생한 이 법은 일정 부분 제도적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와 함께 이제는 산업 경쟁력과 현장 안전을 저해하는 과잉 규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17일 더불어민주당 허성무 의원이 주최하고 한국수력원자력노동조합과 사단법인 원자력정책연대가 공동주관한 ‘원전감독법 이행 경과 진단을 통한 개선 국회토론회’가 국회에서 개최됐다.
이날 토론회는 원전감독법 시행 10년의 운영 실태를 점검하고, 원전 안전의 본질은 유지하면서도 현장 기술자들의 전문성과 사기를 위축시키는 과도한 규제는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아래 진행됐다.
토론회는 박상덕 전 한전 전력연구원장이 좌장을 맡고, 김경희 원자력정책연대 사무총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발제는 강창호 한국수력원자력노동조합 위원장과 권혁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가 맡았으며, 지정토론에는 유몽희 한국입법정책연구원장, 김학노 전 한국원자력학회장, 공일규 법무법인 오른하늘 변호사가 참여했다.
허성무 의원은 개회사에서 “우리나라 원자력 산업의 발전과 안전을 지켜온 기반에는 현장 기술자들의 헌신이 있었다”며 “원전의 투명성과 안전을 위한 제도의 취지는 존중돼야 하지만, 현장 종사자들의 사기와 전문성이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허 의원은 “원전 안전은 제도의 엄격함만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현장 기술자들이 자긍심을 갖고 전문성을 발휘할 때 확보된다”며 “이번 토론회가 불합리한 제도를 바로잡기 위한 국회 논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중재 원자력정책연대 이사장도 환영사를 통해 “원전감독법은 제정 취지와 달리 지난 10년간 원자력 기술자들에게 과도한 규제와 낙인을 안겨왔다”며 “특히 법 명칭 자체가 종사자들을 잠재적 비리 주체로 전제하는 인식을 담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 이사장은 재산등록, 취업제한, 영리업무 금지, 가중처벌 등 이른바 ‘4대 독소조항’을 언급하며 “평등원칙과 과잉금지원칙 측면에서도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 첫 번째 발제에서 강창호 한수원노조 위원장은 원전감독법의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했다. 강 위원장은 “원전감독법은 2015년 시행 이후 원전 종사자들에게 일반 공공기관을 넘어서는 특별한 규제를 부과해 왔다”며 “전 세계적으로 ‘비리’라는 단어를 법 명칭에 직접 넣은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히 “현행 법체계는 원전 종사자들을 잠재적 비리 대상으로 전제하고 관리·감독하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고 비판했다. 핵심 쟁점으로는 ▲재산등록 ▲취업제한 ▲영리업무 금지 ▲가중처벌 ▲순환보직 제도 등이 제시됐다.
강 위원장은 순환보직 문제와 관련해 “원전은 노형별 구조와 설계, 운전 및 정비 절차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숙련 인력을 발전소 간 강제로 이동시키는 방식은 전문성 축적을 저해하고 안전문화에도 역행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원전 보유국 가운데 종사자를 법령으로 강제 순환시키는 나라는 사실상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며 “이는 현장 전문성 약화와 종사자 삶의 질 저하를 초래하는 대표적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했다.
강창호 한수원노조 위원장 “왜 원전만 특별형법인가”…입법 정당성 논쟁 확산
지정토론자들 “규제는 강하고 실효성은 낮다”…독소조항 개선 필요성 한목소리
취업제한 제도 역시 주요 비판 대상이었다. 강 위원장은 “중간 간부급 인력까지 퇴직 후 장기간 동종 업계 취업이 제한되면서 숙련 인력이 현장에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며 “세계적으로 원전 르네상스가 본격화되며 전문인력 확보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오히려 숙련 인력을 밖으로 밀어내는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과거 원전 비리 문제는 구매·품질 프로세스 개선과 내부 통제 강화 등을 통해 상당 부분 개선됐다”며 “그럼에도 과거 사건을 이유로 만들어진 과잉 규제가 유지되면서 현장 사기 저하와 우수 인력 이탈로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두 번째 발제에 나선 권혁 고려대 교수는 보다 근본적인 법리 문제를 제기했다. 권 교수는 “원전 비리 방지라는 입법 목적은 정당하지만 동일하거나 유사한 비리는 수력, 건설 등 다른 공공산업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며 “왜 유독 원전 산업 종사자만 별도의 특별형법적 규율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특별형법은 기존 형사법으로 규율이 어려운 명백한 공백이 있을 때에만 정당화될 수 있다”며 ▲보충성 원칙 ▲명확성 원칙 ▲비례성 원칙 ▲형벌의 최후수단성 측면에서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히 취업제한 규정에 대해 “직업 선택의 자유와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엄격한 법리적 심사가 필요하다”며 “보완장치 없이 장기간 취업을 제한하는 것은 과도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가중처벌 조항과 관련해서도 “처벌 강화가 실제 예방 효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의문이 있다”며 “중요한 것은 상징적 중벌이 아니라 실효적인 예방·통제 체계”라고 강조했다.
한편 지정토론에서도 현행 원전감독법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어졌다. 유몽희 원장은 “현행 제도는 규제 강도는 높지만 감독 실효성은 낮은 구조”라며 “우수 인재 유입과 장기적 숙련 축적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또 유 원장은 순환근무의 법제화와 재취업 제한을 지적하며 “안전 관련 규제는 유지하되 인력 운용과 산업 경쟁력을 저해하는 규제는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학노 전 원자력학회장은 “원전감독법이 현재는 산업 경쟁력 회복과 생태계 복원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협력업체 진입 장벽 ▲중복 감독에 따른 행정 부담 ▲서류 중심 대응 증가 등을 문제로 지적하며 “처벌 중심 규제가 오히려 형식적 대응과 책임 회피 문화를 낳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일규 변호사는 “원전감독법은 보여주기식 입법의 성격 속에서 만들어진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며 ▲저인망식 규제 ▲포지티브 규제 방식 한계 ▲공급망 붕괴 위험을 핵심 문제로 제시했다. 특히 공 변호사는 “다른 공공기관과 달리 원자력 분야 종사자에게만 특별 규제를 부과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며 “그에 상응하는 보완 장치 없이 규제만 강화된 구조”라고 지적했다.
토론자들은 공통적으로 원전감독법의 패러다임 전환 필요성을 강조했다. 주요 방향으로는 ▲리스크 기반 선별 규제 체계 도입 ▲디지털 기반 스마트 감독 시스템 구축 ▲징벌 중심에서 예방·지원 중심으로 전환 ▲국제 기준과의 정합성 확보 등이 제시됐다. 일부에서는 원전감독법을 폐기하고 일반 법체계로 통합하는 방안까지 언급되며 향후 입법 논의의 폭이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됐다.
한수원노조와 원자력정책연대는 이번 토론회에 대해 “원전감독법 시행 10년의 성과와 한계를 냉정하게 진단하고, 원전 안전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현장 종사자의 기본권과 명예, 전문성을 회복할 수 있는 제도 개선 논의를 본격화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이어 “위헌적·불합리한 독소조항 개선과 합리적 제도 정비를 위해 국회와 전문가, 현장이 함께 지속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