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170달러를 훌쩍 넘어서며, 국내 물가와 경상수지 등 산업 전반에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에너지경제연구원(KEEI)은 최근 발표한 ‘호르무즈 해협 봉쇄(2개월+) 시나리오에 따른 국제유가 전망’에서, 봉쇄 종결 시점에 따라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160~179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원은 특히 이번 사태가 단기 지정학적 불안이 아니라, 실제 공급 차질을 수반한 구조적 에너지 위기라는 점에서 대응 강도를 높여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번 전망은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군사작전 개시 이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항 제한 조치에 나섰다는 가정 아래 작성됐다. 호르무즈 해협은 하루 약 2100만 배럴의 원유가 통과하는 세계 최대 원유 수송 병목지점으로, 전 세계 해상 원유 교역량의 약 3분의 1이 이곳을 지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이라크, 쿠웨이트, 이란, 카타르 등 주요 산유국의 수출이 집중된 만큼, 이 해협이 실제로 봉쇄될 경우 글로벌 석유 공급망 전체가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실제 연구원은 사태 직후 두바이유 가격이 급등해 지난 23일 기준 배럴당 169.75달러까지 올랐다고 분석했다. 이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고점인 113달러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보고서는 시장이 이번 사태를 단순한 심리적 불안이 아니라 물리적 공급 차질이 현실화된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에경연은 봉쇄 해제 시점에 따라 두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4월 말 봉쇄 종료 시나리오다. 이 경우 두바이유는 4월 중 배럴당 160달러 안팎(150~170달러)에서 정점을 찍은 뒤, 5월 사태 종료와 함께 대기 물량 출회와 설비 재가동이 이뤄지면서 점차 하락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후 6월부터 정상 공급 경로가 복구되며, 하반기에는 86~95달러 수준으로 수렴하고 연말에는 83달러 수준까지 내려올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원은 “충격의 절대 규모는 크지만 봉쇄 기간이 짧아 공급 정상화가 비교적 빠른 구조”라고 설명했다.
반면 6월 말 봉쇄 종료, 즉 약 4개월간 봉쇄가 이어지는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충격이 훨씬 심각해진다. 연구원은 이 경우 두바이유가 6월 중 배럴당 179.4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공급 부족이 누적되고 전략비축유 방출 효과가 점차 약화되면서 시장의 상방 압력이 극대화된다는 것이다.
봉쇄가 4개월 이어질 경우 6월 피크 시점 공급 부족은 하루 692만 배럴에 달할 수 있으며, 이후 8월부터 정상 공급이 재개되더라도 유가가 빠르게 안정되기보다는 완만한 회복 경로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 경우 연간 평균 두바이유 가격도 107달러 수준으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연구원은 이번 분석에서 호르무즈 봉쇄에 따라 OPEC-9 국가의 순공급이 하루 1069만 배럴 감소하는 상황을 전제로 삼았다. 호르무즈를 통과하는 물량 가운데 사우디와 UAE, 이라크 등의 파이프라인 우회 수출분 약 900만 배럴은 일부 상쇄 요인으로 반영했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세계 공급 차질은 매우 크다는 판단이다. 또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비상재고 4억 배럴이 3월부터 305일간 하루 131만 배럴씩 균등 방출된다고 가정했음에도, 장기 봉쇄 시 유가 급등을 막기엔 역부족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연구원은 이번 호르무즈 사태를 과거 석유시장 공급 충격과 비교해도 상당히 큰 규모의 위기로 평가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1973년 1차 석유파동 당시 세계 석유 공급은 7.5% 감소했고 유가는 217% 급등했으며, 1979년 2차 석유파동 당시에는 공급이 9% 줄고 유가가 148% 상승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도 공급 충격 규모가 약 3% 수준이었지만, 이번 시나리오는 글로벌 공급 병목이 실제로 차단되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그 파급력이 결코 작지 않다고 진단했다.
유가 경로의 핵심 변수는 결국 봉쇄 해제 시점과 공급 정상화 속도다. 연구원은 상방 리스크로 ▲봉쇄의 4개월 이상 장기화 ▲IEA 비상재고 방출 여력 축소 ▲중동 정유·수출 인프라에 대한 물리적 피해 등을 꼽았다. 반대로 ▲조기 휴전과 봉쇄 해제 ▲IEA 추가 공조 방출 ▲고유가에 따른 글로벌 수요 둔화는 하방 요인으로 제시됐다.
에경연은 이번 보고서에서 무엇보다 에너지 안보 체계 전반의 재점검 필요성을 강조했다. 연구원 관계자는는 “고유가 장기화는 경상수지와 물가, 실물경제 전반에 상당한 파급이 불가피하다”며 “현행 대응조치의 실효성을 지속 점검하는 한편 봉쇄 장기화에 대비한 추가 방안을 선제적으로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특정 수송로에 대한 공급 집중이라는 구조적 취약성이 다시 확인된 만큼, 중장기 에너지 안보 체계 전반에 대한 점검이 병행돼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